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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막 아프리카/이집트

헬집트와 이집트의 경계선, 기자 피라미드를 가다

# 기자 피라미드에서 방심은 절대 금물. 


넷째 날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만 맡긴 채 11시 경 기자 피라미드가 있는 엘 기자(El Giza) 역으로 이동했다. 호스텔에서 100~200 파운드 가격에 투어 비용을 제시하는 편인데 이것도 피라미드와 사카라 등 주위 지역을 이동하는 비용만 묶어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나는 고심 끝에 지하철과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입장료는 어차피 따로 계산해야 하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기자만 충분히 돌고 와도 후회 없을 것 같아서였다. 카이로 4일 째. 지하철 타는 것도 이젠 쉬울 정도로 적응이 된 것 같다. 마이크로 버스가 있는 곳까지 조금 걸어 나가야 하는데 앞에 10살 아들과 손을 잡고 가는 이집트 사람이 보여 길을 물어보니 어디서 타야 하는지 잘 알려준다. 


이미 피라미드에 4번 왔다는 그는 아들을 위해 알렉산드리아에서 왔다고 한다. 그들 부자와 함께 마이크로버스를 탔다. 요금은 단돈 1파운드. 유창한 영어로 그는 이집션 여행객들이 들어가는 입구로 가면 보다 싸게 즐길 수 있다고 팁을 준다. 버스 안에는 프랑스 여행객 3명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팁을 알려주어 함께 이집션 입구까지 가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생각한 대로 잘 왔다. 기자 피라미드 근처 사거리에서 다른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피라미드 구역 뒤쪽의 수많은 마굿간이 모여 있는 마을로 들어가서 내렸다. 그리고 어느 마굿간 샵에서 함께 도착할 때까지 나는 10살 배기 아들 녀석과 장난을 칠 정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곧 말이 우리 앞으로 온다. 아들 먼저 타고 그 다음 나보고 타라고 한다.








주위에는 그의 말대로 수많은 이집션, 특히 학생들이 많이 말을 타고 가고 있었다. 말을 타는게 처음이라 겁이 나기도 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어 자연스레 두 번째로 말에 올라탔다. 그는 많이 탔다면서 여기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아들과 내가 먼저 출발하는데 프랑스 친구들은 말이 무섭다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들은 말을 전에도 타봤는지 능숙하게 혼자 잘 이끌고 가는 반면, 내가 탄 말은 조금 어린 편이라 그런지 고삐를 돌려도 잘 말을 듣지 않아 옆에 가이드가 동행하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조금씩 빨리 피라미드 뒤쪽 입구를 건너 사막을 올라갔다. 그리고는 어느 언덕배기에 올라 3개의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아무래도 어린 말이 초보자인 나에겐 익숙치 않아 돌아와서 말을 교체하고 스핑크스와 쿠푸 왕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좀 더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아들은 거기까진 가지 않는다고 했고 대신 내가 올 때까지 쉬면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왕 시작한 이상 도중에 내리기도 뭐한 상황이라 계속 말을 타고 갔다. 


보통 관광객이 입장하는 루트가 아닌 정부 관리 구역 뒤쪽으로 들어가기에 티켓은 가이드가 끊어오기로 하고 기다렸다. 잠시 후 80 파운드 짜리(학생 할인이 되지 않은 정상 가격) 일반 티켓을 가져와서 그들에게 제출하고 말을 타고 입장했다. 피라미드 앞에 도착해서 사진도 찍고 스핑크스가 있는 입구 앞에 가서 사진도 찍었다. 












약 2시간 가량 말을 타서인지 체력도 소비되고 내부까지 볼 여력은 없었다. 처음 탄 말보다 두번째 탄 말은 능숙하고 안전하게 나를 잘 데려다 주었다. 돌아가는 동안 그들 부자가 기다릴까 걱정도 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그들은 여유있게 차를 마시며 나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약간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음을 그 때 느꼈다. 


말을 타기 전 가격을 물어보고 협상을 하는 과정을 당연히 했었어야 했는데 이집션 부자만 믿고 얼떨결에 말을 타서 관광을 이미 마친 후. 속으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가격을 재놓고 그때서야 얼마인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내 머리를 강타해버렸다. 입장료를 포함하여 800 파운드. 100$(= 약 780 파운드)보다 큰 가격이다.


내가 생각한 최고 가격은 200 파운드 정도. 아들을 데리고 관광을 하러 온 그들을 내가 의심하지 않았고 말을 타기 전 가격 협상도 하지 않은 자신에게 내리는 형벌 같았다. 일단 겉으로는 진정하고 그 가격에는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맞섰다. 그래서 최종 합의한 가격이 450 파운드. 도대체 이집트에서는 이렇게 가격이 고무줄처럼 늘었다가 줄어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기분도 나쁘고 사람에 대한 믿음도 떨어지고 자신에 대한 책망도 커지게 된다. 복잡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서 돈을 계산하고 나와 무작정 걷다가 진정하고 본래 여행객들이 입장하는 피라미드 입구 쪽으로 발을 돌렸다. 그 앞에 KFC가 있는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 피라미드 입구 앞에 도착할 당시 이미 오후 4시 30분. 해가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전망은 예상대로 좋았고 쓰라린 배에 허기짐이라도 없애기 위해 햄버거를 먹으러 들어갔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사실 말을 타고 잘 즐겼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과 속상함은 당장 어쩔 수 없었다. 슬리핑 열차에 이은 최악수를 바로 둔 자신을 탓하지 않고 무엇하랴. 






# 룩소르(Luxor)행 슬리핑 열차를 타다


하지만 계속 멍 때릴 수는 없었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챙기고 다시 엘 기자 역으로 와서 밤 8시에 열차를 타야 했다. 7시 40분 경 다시 기자역에 도착했을 때 슬리핑 열차를 기다리는 중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여행사를 통해 온 관광객이 아닌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8시에 열차에 올라탔고 더블름에 홀로 쓰게 되어 약간의  위안을 얻은 채 자리에 앉았다.


이제 더 이상 이집트에서 악수는 두고 싶지 않다. 룩소르나 아스완에서는 볼거리만 원래 내 방식대로 빨리 보고 여행을 마칠 계획이다. 슬리핑 열차는 생각보다 편했고 저녁도 나쁘진 않았지만 맛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편히 누워 쉴 수 있고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직원이 깨워준다고 하여 마음을 놓고 침대에 누웠다. 








이집트 공항부터 기자 피라미드까지 지금 타고 있는 슬리핑 열차에서 며칠간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다. 지나고 나면 웃으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추억 거리임을 알았는지 마음이 편안해 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새로운 하루가 다시 시작이다. 이제 이집트 고대도시의 수도, 룩소르(Luxor)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