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눔문화

촛불시위 2주년 즈음에.. 반성문

2010.05. 17. 월요일 새벽 1시 44분.

먼저 촛불 반성문을 쓰게 만들어 준 각하와 조선일보에 감사를 표합니다.

촛불시위 반성문을 지금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글 먼저 소개합니다.
http://bit.ly/befyCU
촛불예비군 차정현 중사님의 원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bit.ly/bgtZjq

2008년 6월 8일이었습니다.
그 동안 기사로만 접하던 촛불시위.
하지만 MBC PD수첩을 접한 이후부터 마음 속으로 지지해왔던 촛불시위.
당시 근무하던 회사에서 마침 일도 일찍 끝나는 겸 함께 가신다는 직장 선배님과 함께 남대문으로 갔습니다.

이미 수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서울 광장 뒷쪽 거리 한켠에 촛불을 들었습니다.
직장 선배님은 나이도 있으시고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 먼저 자리를 뜨셨습니다.

혼자라 뻘줌한 상태에 잠시 고민하였으나 이왕 거리에 나온 김에 조금 더 있자..
왜냐하면 거기에서 본 시민들의 모습은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하지만 똑같은 심정으로 나온 사람들이기에 꼭 혼자라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았습니다.

10시 넘어선가 거리행진을 한다고 합니다.
시청에서 광화문, 광화문에서 서대문, 서대문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가다가 돌아왔습니다.
경찰 병력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평화적으로 돌아갔습니다.

12시 막차를 타기까지 내가 본 시민들의 모습은 다양했습니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나온 여고생들, 아이와 함께 나온 부모님들, 대학생들, 할아버지, 할머니, 나와 같은 넥타이 부대들.
그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삼삼오오 촛불을 들고 평화롭게 있었습니다.
간혹 흥분한 일부 사람들이 '이명박 어쩌구 저쩌구'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간접적인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취재하는 경향, 한겨레 등의 기자들과 아프리카 방송 등의 온라인 개인 매체 기자들은 여기저기 뛰어 다녔습니다. 특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교차하는 거리에서는 조선일보 물러가라! 라고 더욱 세게 외쳤고, 경향신문사를 지날 때 '힘내라'는 말을 여기 저기서 할 때 그 기자들은 스스로 뿌듯해 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였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촛불시위는..
왜냐하면 나는 단 한번 거리로 나갔을 뿐이고 함께 한 시민들을 지켜볼 뿐이였지요.

그리고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직장생활, 문화생활, 여가생활..
이후 언젠가 명동 거리에서 무작위로 시민들을 연행한다는 기사 등의촛불시위에 대한 보복성 기사를 접할 때 울분과 분노가 치밀었으나 행동한 건 없었습니다.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 평소처럼 일에 치이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서울광장 옆 대한문에 자리 잡아 촛불을 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후 며칠동안 울기만 하다가 그냥 왔습니다.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냥 멍하니..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촛불을 들었던 기억은 망각 속으로 잠시 잊혀질 때...
지난 월요일 조선일보에서 실은 특집기사와 각하의 반성문 쓰라는 충고에 이렇게 다시금 기억이 되살았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반성하는 마음을 이렇게 글로 기록하는 것 뿐입니다.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행동하는 양심들. 깨어있는 시민들께.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나 자신만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반성합니다.
나 자신을 행동하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도록 하나 하나씩 느리지만 계속 바꾸어 나가겠습니다.
지금 이 글을 기록하는 이유도 자신에 대한 다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당당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정당당한 아들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정당당한 남자친구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정당당한 친구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정당당한 아빠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정당당한 시민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의 정정당당한 젊은 청년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2010년 05월 17일 오전 2시 07분.
채 우 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