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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문화

이창동 감독, 시(詩)를 보고 나서...

시: 삶의 고통과 슬픔을 먹고 산다.

어느 날 우연히 문화강좌에서 시를 배우게 된 미자는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강의를 듣는다. 시에 대한 경외감마저 가지고 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나요?"

"선생님, 시는 언제 오나요?"

선생님, 왜 시가 안 써 지는 거죠? 아무리 노력해도 안돼요."

"선생님, 시가 언제 오나요? "

 

그녀는 시 창작교실에 갈 때마다 '시'를 쓰고 싶지만 쓰여지지 않아 고민한다. 그 모습은 타성에 젖어 사는 우리들에게 종을 울린다. 50년 전에 선생님으로부터 '미자야 너는 커서 시를 쓰면 되겠다'고 들었던 말을 기억한 미자, 드센 삶을 살아온 그녀는 알츠하이머병 초기증세까지 있어 단어를 점점 잃어갈 때야 비로소 '시'를 갈망한다. 현실은 그녀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를 갈구하는 세계와 걸맞지 않게 그녀를 긴장시킨다. 미자는 시와 세상의 충돌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시는 '보는 것'에서부터 발아한다고 영화에서 시인은 말한다. 영화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하는 김용탁(택) 시인은 "우리가 '사과'를 몇 천 번 몇 만 번 보았다 해도 정작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현대인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둔감하게 살아간다. 그는 "시가 죽었어"라고 말한다.

 

시가 죽었다는 것은 결국,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느껴야 할 타인의 고통과 신음과 슬픔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내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 직시한다는 것이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자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잃어버린 시를 대하는 순수성과 경외감을 일깨운다. 고통스런 일을 직면하고 진지하게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을 성찰하는 미자, 삶에 깊이 천착해 있음을 본다. 처음에는 명사, 그 다음엔 동사, 미자가 차츰 단어를 잃어간다는 것은 결국 이 시대가 언어의 순수성을 잃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시가 죽어갈 뿐만 아니라 타인의 말, 진정한 소통, 타인의 아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져 가는 현 시대를 이 영화는 조용히 고발한다.


시는 삶의 고통과 슬픔을 먹고 자란다

 

결국 시란 삶의 고통과 슬픔을 먹고 자라는 것. 어쩌면 영화를 통해 감독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현대인들에게 타인의 고통과 슬픔, 마음에 눈뜨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시대에 진정한 시는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고 타인의 절규가 나의 절규로, 타인의 슬픔이 나의 슬픔일 수 있을 때 쓰여진다. 시는 진주조개가 진주를 만들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듯, 현실에서의 고통을 겪으면서 태어난 것이다.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아네스의 노래'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 강물소리, 비와 바람과 풀...죽은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의 슬픔과 교감하기 위해 애썼던 미자, 그리고 그 복잡한 삶 고뇌의 한가운데서 쓰여진 시.

한편의 시를 남기고 흐르는 강물처럼 먼 길을 떠나버린 '미자'야 말로 진정한 시인이었다.

 

이 세상에서 '시'가 없다면, 문학과 예술이 죽고 없다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비참하지 않을까. 시가 있고 문학이 있어 사람들은 그래도 생각하고 보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살아간다. 무디어가고 굳은 살 박혀가는 마음이 그래도 시가 있고 문학이 있어 사람 냄새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남루하고 허접한 일상과 미자

 

"아무 일 없어도 세상에/ 찔레 아카시 진다 산에는" (<산에는>, 전문)

 

언젠가 뒷산에서 인생을 생각하며 만든 단시다. 일본의 강력하고도 유구한 시 형식인 '하이쿠'를 변형하여 써본 것이다. 열아홉 글자로 이루어진 단시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연과 세상살이의 필연적인 연관이었다. 무심히 흐르는 것 같은 삶의 고비마다 무엇이든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무디고 굼뜬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


시를 찾아가는 여정

 

"살구는 온몸을 땅바닥으로 내던진다. 땅바닥에서 구르고 발핀다. 다음 생을 위해." (미자의 <수첩>에서)


그리하여 시는 삶이고, 삶은 시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밤 잠 깨어 홀로임에 울어보는/ 무너져 가는 마음의 기둥/ 꼿꼿이 세우려/ 참하고 단단한 주춧돌 하나 만드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 제2연 일부)

 

조영혜 시인의 <시를 쓴다는 것>에서 발췌한 것이다. 시와 주춧돌을 연결하는 사이참에 자리한 한밤의 고독과 무너지는 마음의 기둥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미자가 느끼는 절망과 고적과 붕괴의 상념을 생짜배기로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세상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누구도 들어줄 수 없는 회한과 아픔과 고독을 견뎌야 하는 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