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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아시아/인도

(2/2) 인도의 정신적 고향, 바라나시에서 환상을 버리다

부다니즘, 힌두니즘 문화를 탐방하다


# 사르나트, 부다가 깨달음을 얻은 뒤 처음으로 설법을 편 곳으로 불교 4대 성지의 하나 


바라나시에서 사르나트까지 오토릭샤 기준 약 1시간 정도 걸릴 정도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오후에는 매우 덥기 때문에 아침 9시 경 오토릭샤를 타고 출발하여 도착하자마자 고고학 박물관과 다멕 스투파 입장료를 각각 5Rs, 100Rs에 구입. 입장료 액수에 다소 시시할 거라 여기고 들어간 고고학 박물관은 시대적으로 수많은 고고학 유적들을 많이 보관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 깨달음을 나누기 위해 사르나트에 온다. 하지만 수자타라는 소녀의 우유죽 공양을 받은 뒤 고행을 포기한 것으로 여긴 도반들이 부다를 변절자로 여긴다. 고행만이 깨달음의 전부가 아님을 안 부다는 멀리하려는 이들을 찾아와 첫 설법인 사성제를 전한다. 부다가 깨달은 진리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무언가를 얻으려는 집착으로부터 온다. 하지만 괴로움이 끊어진 상태(이를 열반이라고 함)가 존재하며 이를 위해 올바른 생각, 올바른 행동 등을 수행하면 된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부다가 처음으로 설법한 자리에 세워진 기념탑으로 아쇼카 왕에 의해 건립된 곳이 다멕 스투파이다. BC327년 2년간 인도를 침입한 알렉산더 대왕의 영향으로 혼란에 빠진 공백을 메우며 패권을 얻은 마우리아 왕조 시대. 인도 지역을 점령하며 그의 손자 아쇼카에 이르러 마우리아 제국은 최고 전성기를 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수한 전쟁 끝에 아쇼카 자신이 평화를 생각하여 불교로 개종하며 불교가 세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은 그리스 문화와 인도 문화가 결합된 간다라 미술이 탄생하여 인도 문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BC 6세기 경 룸비니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왕가 출신으로 태어날 때부터 관심을 받았지만 정작 그는 현세에 만족하지 못해 29세에 출가를 시작하여 숱한 고행과 명상 끝에 중도의 길을 깨칠 때가 35세. 사르나트에 돌아와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제자들에게 전해주었다. 자신의 가르침이 종교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사후 제자들이 경전을 만들고 불상을 조성하여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인 불교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사르나트는 불교의 4대 성지답게 일본, 태국, 티벳, 중국 등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불상을 모신 사원들이 많이 있다. 



인도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믿는다는 힌두는 다산스크리트어인 신두(Shindu)의 페르시아 발음으로 인도 그 자체를 지칭한다. 인도의 역사는 본래 유목민족인 아리아인들까지 거슬러 올라갈 때 당시 피정복민을 학살 또는 노예로 만드는게 일반적이었으며, 이 때 최초의 카스타가 나타났다. 이 때, 신정일치 사회이던 당대 최고의 사제계급 브라만이 신에게 바치는 찬가나 각종 주문들을 집대성한 것을 베다라고 하며, 현재까지도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한 정경으로 취급되고 있다. 


힌두의 신들은 워낙 많아 다 알 수도 없지만 대표적인 신들만 알아도 인도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창조의 신 브라마(Brahma)는 4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데 4개의 베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브라마 신은 다른 신들을 창조한 주이지만 정작 힌두교인들에게 커다란 숭배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창조’가 이루어져 현실 삶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유지와 법의 신 비슈누(Vishunu)는 여러 아바타를 지니고 있는데 부다까지도 포함한다고 한다. 반은 독수리 반은 인간의 모습을 띤 가루다(Garuda)를 타는 장면은 조각상에도 많이 등장한다. 파괴의 신 쉬바(Shiva)는 파란색 피부와 그 위에 얹어진 초승달 장식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파괴와 재창조의 상징부터 정력의 상징까지 여러 복잡성을 대표하는 신이다. 


   

기타 비슈누 신의 아바타인 라마(Rama) 신은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의 도움으로 악마를 물리쳐 복종과 헌신의 상징성을 나타낸다. 서유기 손오공의 모델이기도 하다. 


# 베나라스 힌두 대학교 내 박물관 


부다와 힌두 문화를 더욱 이해하고 싶으면 베나라스 힌두 대학교(B.H.U.: Benaras Hindu University) 내 박물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라트 깔라 바반(Bharat Kala Bhaban)이라 불리는 박물관에서는 부다와 힌두니즘을 시대별로 나타내는 고고학적 유물뿐만 아니라 화려한 원색과 세심한 붓터치가 인상적인 인도 회화 작품들까지 관람할 수 있다.


베나레스 힌두 대학교는 영국 식민지 시대를 개탄한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말라비야가 설립한 바라나시의 대표적인 학교로 그의 장례식 때 많은 사람들이 B.H.C 관문 앞에 모인 사진도 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스위스 여성 조각가인 알리스 보너(Alice Boner)는 인도의 유적들을 재해석하여 세계에 알리는 인도의 대표 조각가로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힌두 조각상들이 단순히 신을 표현하는데서 벗어나 기하학적으로 대칭적인 선과 비율에 따라 표현했다고 해석한 점이 인상 깊었다. 인도의 직물에서도 화려히 수 놓은 장식들은 일부 작은 조각들이 반복과 대칭에 의해 전체와 비슷한 기하학적인 형태(수학에서 이를 프랙탈이라고 말함)를 확인할 수 있다. 



# 바나라시 여행을 마치며 


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로 올 때까지만 해도 바라나시는 기대를 많이 했던 곳 중 하나였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으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고 바라나시를 보았다면 인도를 모두 본 것이다'라고 말한 그 곳.

나의 짧거나 좁은 식견 또는 더운 날씨로 인한 컨디션 저하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에겐 그 표현은 맞지 않았다. 그저 여행사나 가이드북 저작권자들이 좋아할만한 표현에 지나지 않았을 뿐.


바라나시에서 강가와 가트 주변에 몰려드는 현지인들은 그들 스스로 신성시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조금만 밖으로 나오면 인도의 비참한 가난과 곳곳에 끊임없이 의심되는 위생 문제가 버젓이 드러나있고,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 암거래를 통해서라도 돈을 벌려는 속세의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물론, 이것도 인도의 일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도 전체를 대변한다고 하면 남은 기간 인도에서 가질 수 있는 기대감이 커지진 않을 것 같다. 


물론 다음 여정인 아그라에서 세계 최고의 대리석 건물로 유명한 따지마할만 보려고 인도에 온 것은 아니다. 다만, 가트 주변 그들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풍경보다는 오히려 조용하고 시원한 박물관 내에서 인도의 유적과 회화작품을 통해 인도 문화의 찬란함과 위대성을 확인하는 자신이 환상을 가져 그런 것은 아닌지 되물어본다. 그래서 앞으로는 환상을 버리기로 한다. 바라나시가 그토록 외국인들에게도 신성스러운 곳인지 스스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내일 아그라로 긴 시간 이동하기 위해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