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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아시아/인도

북인도 계획도시 찬디가르에서 짧게 머물다

# 섹터(Sector)


온갖 암거래가 성횡하고 조직 폭력배들이 총과 바주카포 등 무기를 들고 서로를 위협하는 그 곳. 하지만 정작 가장 가난하고 힘 없는 서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기도 한 그 곳. 정부도 손을 놓아버린 13구역을 자기 스타일로 빠르고 리얼하게 만들어 낸 뤽 베송의 ‘13구역’ 영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도 푼잡(Punjab) 주 찬디가르(Chandighar)라는 도시는 인도 최초의 계획도시로 47개의 섹터로 구획되어 있다. 스위스 거장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하는 이 곳은 도시 계획 관련 공무원들이 좋아하거나 인도 부유층이 선호할 정도로 지금까지 내가 본 인도가 맞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넓은 도로 주위로 아름다운 정원과 대규모 저택, 호텔, 쇼핑 센터 등이 각 섹터마다 자리잡고 있다. 날씨도 제법 선선하여 높은 물가만 제외하면 한번쯤 방문하기 좋은 정도이다. 



그만큼 모든 섹터를 도보로 여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무식한 나는 버스 스탠드가 있는 17 섹터를 기준으로 9 섹터를 지나 5 섹터에 위치한 수크나 호수, 4 섹터에 위치한 넥 찬드 락 가든 등을 걸어서 다녀 왔다. 그것도 베낭을 메고 말이다. 그래도 17섹터로 돌아와 반대편 45 섹터에 있는 인도 현지인들이 머무는 숙소까지는 사이클 릭샤를 이용했다. 


# 걸어서 저 호수까지


오토 릭샤 드라이버의 외국인 여행자에 대한 가격 횡포에 왠만하면 이용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래 찬디가르 버스 스탠드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2시 30분 쯤. 숙소를 바로 잡기에는 하루 비용이 더 날아가지만 예상했던 바와 다르게 찬디가르 버스 스탠드 내부에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마냥 기다리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일단 나에게 접근하는 오토 릭샤 드라이버들을 뿌리치고 베낭을 내려 놓고 앉아 쉬며 짜이를 마신다. 그래도 적들은 한 두 놈이 아니다. 버스 스탠드 안에서는 금연이라 담배를 함부로 피지도 못한다. 델리에서 밤 9시에 출발하여 5시간 여만에 도착하여 꼼짝 않고 있을 내가 아니다. 


주위 상황을 지켜보며 맵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주위에 맥도널드 같은 카페가 있는지 확인한다. 다른 곳 같으면 그럴 필요 없지만 델리와 같이 이 곳도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2km 내에 KFC가 있었다. 24시간 하는 곳인지는 모르지만 이 곳이면 24시간 편의점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Go~!


그래도 새벽 4시. 주위는 어둡고 개나 다른 위험요인이 있는지 모르니 천천히 긴장하고 걸어간다. 그렇게 무사히 갔지만 닫혀있었다. 잠시 목을 축이며 쉬다 보니 서서히 여명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새벽 빛을 벗삼아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좀 더 걸어가보기로 한다. 점차 새벽 운동을 나오거나 개와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지도를 확인하고 더 걸어가다보니 섹터 4와 섹터 5 분기점까지 도달.    



섹터 5 쪽에 위치한 수크나 호수를 먼저 보고 섹터 4로 돌아오기로 한다. 목표가 명확한 시점부터는 발걸음이 제법 가벼워진다. 걸어가면서 본 거리 주위 풍경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깨긋하게 정돈된 도로 주위로 으리으리한 대저택들이 모여 있고 섹터마다 차별화된 특징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게 비슷하지만 여유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릭샤 드라이버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봐도 쿨하게 지나친다. 가끔 관광지에서 사진찍자고 하는 사람들은 더러 있었지만 그래서 더욱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느새 호숫가에 도착해 버렸다. 새벽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이 곳에 모두 집결한 듯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옆에서는 마라톤 행사로 보이는 축제가 벌어진다. 떠오르는 일출을 향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어제 일들을 떠올린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에게서 치유하나보다. 짜증나는 일들도 있었지만 델리에 도착해서 버스 터미널까지 갈 때까지 그래도 현지인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뉴델리에서 올드 델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올드 델리에서 빠하르 간즈까지 이동하여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길을 물어 버스 터미널을 확인. 현지인 가격에 맞춰 탄 오토 릭샤 드라이버 아저씨가 손 흔들어주고.


전날 오후 4시 경 생판 모르는 뉴델리 길 한복판에 내려 당황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ISBT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델리 전체를 둘러보는 보너스를 얻을 줄 누가 알았으랴. 인도 여행에서는 그렇게 사람에게 치이기도 하고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다시 섹터 4로 이동. 이 곳은 넥 찬드라는 사람이 조성한 락(Rock) 가든이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힘이 있을 때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도착하니 8시. 옆에 위치한 카페도 문을 열지 않았지만 청소하시는 분께서 앉아서 기다려도 된다고 하였다.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며 남은 시간 동안 이렇게 글도 쓰고 여유도 찾는다. 


넥 찬드 락 가든은 건설 폐기물, 전선, 모래, 그리고 다양한 돌들을 모아 조성한 아름다운 정원이다. 몸을 뉘어야 들어갈 수 있는 어른에게는 작은 입구 문을 통과하면 다양한 형태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무표정한 인상부터 반가운 표정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들이 조각된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Phase 1부터 3까지 테마를 꾸며 놓은 이 곳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조성된 느낌이다.   




찬디가르 관공서는 허가증이 필요하다고 하여 제외하고 나면 새벽부터 오전까지 베낭을 메고 찬디가르 볼거리를 충분히 만끽하게 된 셈이다. 이제 숙소를 찾아야 한다. 주위 호텔들의 가격은 보통 게스트하우스 가격의 4~5배 이상이다. 여러 군데 돌아다닐 힘은 남아있지 않아 17 섹터로 간다. 그 곳에는 그나마 싼 게스트하우스들이 있으며, 여차하면 바로 버스로 이동 가능하기 때문이다.


# 45섹터(Sector)


17 섹터 버스 스탠드에 도착하여 3 군데 게스트하우스를 돌아다녔지만 이미 꽉 찬 상태. 11시가 훌쩍 지난 체크아웃 시간대에도 새벽에 도착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 곳에 머물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티켓을 구하러 가는 도중 어느 사이클 릭샤의 제안에 눈을 떴다.


45 섹터에 400 ~ 600 Rs 가격대 호텔들이 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보다 비싸지만 매우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둘 수 없었다. 45 섹터는 내가 이동한 반대편 쪽에 자리잡은 다소 가난한 인도 현지인들이 모여 있는 곳. 막상 숙소에 도착해보니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이제 되돌아갈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600 Rs에 가격을 치르고 그제서야 배낭을 내려 놓는다. 


전날 오전 11시에 숙소를 나와 다음 날 오후 2시에 배낭을 내려 놓는다. 잠이 쏟아질 법 하지만 일단 씻고 나서 먹을 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45 섹터에는 자동차 공업소들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거리라서 그런지 그 흔한 식당(레스토랑)을 찾기가 어려웠다. 릭샤를 타고 다른 곳에 가서 먹고 오라고 했지만 비가 올 것 같기도 하고 힘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슈퍼마켓에서 (인도식) 컵라면을 사서 먹고 과자와 콜라 등 나머지 먹거리를 사서 왔다. 그리고 돌아와서 글을 쓰고 뻗어버렸다. 더위 속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동한 거리에 비해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 피곤할 법. 북인도 어느 곳에서 제대로 쉴 수 있을까? 늘 그래왔듯이 나도 내일을 예측하지 못한다. 과연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