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1막 아시아/방글라데시

2. 방글라데시에서 길을 잃다가 다시 길을 찾다

방글라데시에서 길을 잃다가 다시 길을 찾는다


체크아웃 시간은 오후 2시. 일어나서 근처 여행사와 다른 호텔 등을 알아볼 겸 도보로 다닌다. 밤에 본 풍경과 그리 낯설지 않지만 도로는 언제나 자동차와 사이클 릭샤, 사람들로 꽉꽉 막혀있다. 길을 걸어다니다보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거나 친근하게 인사하는 무수히 많은 현지인들도 볼 수 있지만 어린아이나 가난한 여자들이 돈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맞이하게 된다. 심정으로는 몇 푼이라도 주고 싶지만 가급적이면 주지 않는다. 한 번 주면 여기저기서 돈을 달라는 사람들로 오고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몇 푼 준다고 해도 이들의 가난이 풀리지 않는다. 


아직까지 원조를 받는 최빈국 나라이지만 2015년이 지나 앞으로도 당장 기간산업 투자나 관광사업 개발 등 산업을 육성하여 자국민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은 생각이 부와 권력을 지닌 계층들에게는 없는 것 같다. 부패가 심할수록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거부하는 편은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어제 배를 통해 강을 건너온 경우도 그렇다. 불과 몇 Km 되지 않는 강에 다리를 놓는게 현재까지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갠지스강 삼각주 지대에 위치하여 강 아래 진흙층이 두터워 시공 기술의 어려움과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이해되지 않는다.


몇 군데 호텔과 여행사로 적힌 곳을 찾아갔지만 별 소득이 없다. 어제 묵은 호텔이 가격과 시설면에서 좋은 편이지만 싼 값에 호텔 이용하려고 이 곳에 온 게 아니다. 여행사라고 적힌 곳은 비행사 티케팅이나 비자 업무 대행 수준의 업무만 처리하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나를 신기하면서도 친근하고 반갑게 대해주지만 방글라데시는 외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직까지 여행하기는 쉽지 않은 나라이다. 올 초까지 외교부에서는 여행자제 혹은 여행철수 지역으로 분류할 정도로 치안, 위생 등 불안정한 요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렇게 3시간을 헤매다가 겨우 점심을 먹고 힘겹게 호텔로 돌아왔다. 쇼파에 앉아 담배를 물으며 생각에 잠겼다. 다시 인도로 돌아가야 하는가? 돌아가도 기차 티켓팅은 다시 해야 한다. 아니 그것보다도 다카에서 바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다른 호텔로 옮겨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진 않는다. 관광 안내소나 여행사도 찾기 힘들다. 콜카타와 비슷하지만 다카에서는 현지 음식 이외 패스트푸드나 커피점을 찾기 더 어렵다. 한국 생각이 많이 나기 시작한다. 음식, 와이파이... 


일단 어제 이용한 여행사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묵은 호텔에서 가까우니 가서 물도 얻고 영어가 그나마 되는 사람들도 있으니 와이파이 되는 곳도 물어볼 겸 말이다. 체크아웃할 때 혹시나 하고 직원에게 근처 와이파이 되는 지역을 물어보았다. 20층 레스트랑 라운지에서 가능하다고 한다. 사용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가능하다고 한다. 갑자기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스트랑 직원들은 베낭을 메고 모자를 둘러멘 이방인 여행객이 와이파이 쓰러 온 것을 이해하고 잘 받아주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주문하라고 압박하는 낌새도 못 느낀다. 먼저 가족에게 잘 도착했다고 연락을 한다. 그리고 구글로 방글라데시 여행 정보를 검색한다. 



간혹 혼자 여행다니는 사람들이 쓴 블로그도 보이지만 자세한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한인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를 찾아 카톡으로 연락을 취한다. 하루 숙소 비용이 50$로 내가 묵은 호텔보다 5배 이상 비쌌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음식과 정보이다. 별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였지만 그냥 다카를 떠나기 아쉬워 결국 이 곳에서 묵기로 결정. 오후 5시 넘어 픽업하러 온다고 한다. 잠시 와이파이 쓰러 왔지만 벌써 1시간이 넘었다. 미안한 마음에 콜라 하나 시키고 왔다. 이제 남은 두 시간 동안 방글라데시 정치와 역사, 여행 정보 등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5시가 넘어 호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1층에 내려와 기다린다. 늦어도 5시 30분까지 온다고 하였지만 실제 만난 시간은 6시 30분. 1시간 반 이상을 베낭을 멘 체 서서 기다리다 보니 다리가 저린 것을 눈치챈 길가 옆 구두닦이 청년이 와서 앉으라고 할 때 쯤이었다. 교통체증 때문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만큼 교통 상황은 빈약한 도로 사정과 인구의 집중도로 인하여 늘 좋지 않다. 


약간 지쳤지만 돌아가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린다. 이 곳 교민이기도 하신 한인 분과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방글라데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점차 비슷한 직업군에 종사하여 서로를 잘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교육, 경제, 사업, 정치 등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중에 보니 학교 선배님이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50$이면 그리 큰 돈이 아니지만 이 곳에서는 매우 큰 돈이다. 특히 나같은 백패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교통체증 속에서도 좋은 이야기와 정보를 듣는 것만으로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묵었던 호텔 주위는 구 도심이라 가난한 현지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지만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곳은 공항 근처 대사관과 비싼 빌라 저택들 뒤로 위치한 신 도심이다. 한국의 한남동과 흡사한 숙소(http://abbihouse.com)에 도착하니 오후 8시. 손만 씻고 바로 저녁을 먹자고 한다. 방글라데시 여행 안내도 이 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들어가보시길.

현지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만든 한국 음식이지만 수제비부터 탕수육, 밑반찬까지 정말 눈물나게 맛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한달 만이지만 마침 지칠 때 쯤 이 곳에 와서 좋은 정보와 음식을 나누니 힘이 솓는다. 


참고로 예전에 게스트 하우스 운영 전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2년 계획했지만 실제 7년을 여행한 찰리도 이 곳을 찾아 보름 간 글도 쓰며 잘 먹고 잘 쉬었다는 여담도 들려준다.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유명 인물로 결국 여행 막바지에 결혼을 했대나 어쨌대나. 나로서는 집에 온 듯한 느낌이다. 모처럼 욕조에 뜨거운 물도 받아 몸을 담군다. 와이파이도 빨라 지난 야구 경기 하이라이트도 보고 다운 받아 놓은 영화도 본다. 그렇게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잠시 숨고르기


모처럼 고향집에서 푹 잔거 같다. 아침 8시에 겨우 일어나 잘 차려진 한국 음식을 먹는다. 메뉴는 불고기와 호박 무침, 김치전 등 화려하게 수놓은 한국 음식들. 배불러도 더 먹는다.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2인분의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오늘 일정을 생각해 본다. 오늘 일정은 주위 동네만 산책하고 정보를 얻는 일.



먼저 정보를 얻고 바로 나가도 되지만 이렇게 쉴 수 있는 여유와 서비스를 되도록이면 만끽하고 싶기 때문. 24시간 전만 해도 몸도 지치고 정보도 없고 음식 때문에 한국 생각이 났었는데.. 천천히 쉬고 정보를 검색한다. 빨래도 맡기면 된다고 하여 평소 입는 옷과 속옷 빨래야 직접 하지만 한달만에 더러워진 가장 중요한 아이템 힙섹과 배낭커버까지 맡긴다. 


그리고 여유 있게 쉰다. 다음 여정, 수도 다카를 여행하기 위해 최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