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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아시아/인도

4. 여행하는 나라를 바꾸려 말고 먼저 받아들여라

인도를 여행한다면 인도를 바꾸려 말고 인도를 먼저 받아들여라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전에 여유있게 스스로 드레싱을 마치며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 방문할 곳은 814년 개장한 최초의 현대식 박물관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며, 인도에서 가장 큰 인디언 뮤지엄. 하지만 식후경이 먼저! 서더 스트리트 끝 쪽에 위치한 길거리 식사를 깔끔하게 마치고 담배를 피우려고 할 때 잡화를 파는 청년이 말을 걸어 온다. 보통 인도인들은 외국인에게 친화적이라 말을 쉽게 거는 편이다. “어느 나라 출신이냐?”를 시작으로 대화가 진전 있으면 “이름이 무엇이냐?”까지. 그냥 손을 들고 웃음지으며 인사짓으면 인도인들은 따듯하게 맞이해준다. 반대로 그들이 다가서면 간단한 인사 정도는 에티켓. 가끔 정도가 지나친 이들은 피해야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순수하게 말을 걸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말을 걸어온 청년은 물건을 팔어 접근했지만 소용이 없는 것을 알자 담배 하나 달라고 한다. 서로 담배를 물으며 어디 출신이냐고 묻길래 한국이라 말했더니 옆에 한국 분이 있다고 알려준다. 아버지 또래 어르신 한 분이 가방을 앞으로 맨 체 인디언 뮤지엄을 나오는 길인 듯 보였다. 정중히 말을 걸었다. 한국말 참 오랜만에 써 본다. 한국분이 맞다. 그리고 혼자 여행하시는 분이시다. 그것도 인도를 2월달에 델리부터 시작해서 북인도를 거쳐 네팔을 넘어가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진 사태를 만나 무사히 이 곳 콜카타로 내려왔다고 말하신다. 그냥 인사만 하고 가기는 무언가 아쉬워 차나 한잔 마시자고 했는데 다행히 받아주신다. 


이미 서인도, 북인도를 거쳐 동인도로 3개월 넘게 홀로 여행 중인 65세 어르신. 남인도까지 거쳐 여행한 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으로 아시아를 여행하실 계획. 방글라데시 입국도 고려하고 있어 비슷한 처지지만 인도에 갓 입문한 나에게 참으로 반가운 스승같은 분이었다. 콜카타에 어제 도착했지만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라면서 여유있는 포스를 지닌 이 분께 인도 여행의 가치를 질문 드렸다. 자신은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은 나라가 인도였으며, 막상 여행해보니 가끔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고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신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힘이 들면 여행자로서 나가면 그만 아니겠느냐? 


당연한 말이지만 직접 들으니 위안을 얻고 용기가 난다. 서로의 시간을 더 뺏기 전에 아쉬운 이별을 나누었지만 사진 한 장은 남겼다. 그런데 서더 스트리트에 위치한 교회 옆 길가에 가축들이 떼모여 식사를 하는 모습에 서로 자신의 사진기를 든다. 백패커에게 나이란 숫자에 불과할 뿐. 반가운 만남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인디어 뮤지엄으로 향한다. 



인디언 뮤지엄은 식민지 시대에 영국인에 의해 지어진 박물관으로 선사 시대 이전 청동조각부터 동전, 진품 도자기, 무굴 세밀화, 벵갈 아트 등 볼거리는 많은 편이다. 입장료는 150 Rs. 특히, 부다의 전생애를 상징적으로 담는 작품들이 여럿 보인다.       



관람을 마치고 조금 쉬다가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벌써 5시가 가까워진다. 더운 햇볕은 점차 누그러질 때이지만 보통 사원이나 뮤지엄은 6시 이전에 닫기 때문에 애매한 시간이다. 하지만 숙소로 들어가긴 더욱 애매하니 그냥 Go! 다음 목적지는 기리시 파크 근처에 위치한 라빈드라나뜨 타고르 시인의 생가. <동방의 등불>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타고르는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시인이자 사상가로 1913년 노벨문학상을 동양인 최초로 받은 인물. 


타고르 생가 근처 마블 팰리스를 찾았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빠레쉬나트 사원으로도 불리는 인도 동북 지역의 자인교 사원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이 난 쉬날나뜨지 자인교 사원. 자인교의 10대 터탕가르인 쉬딸나뜨를 모시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타고르 생가 박물관과 더불어 이 곳 역시 6시가 넘어 도착하였기에 안쪽까지 모두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무언가를 굽는 할머니가 보여 배도 고플겸 하나 사가려고 했다. 그런데 별 것도 아닌 이와 같은 행동이 동네 주민들에게 신기한 광경으로 보였나보다. 하나에 얼마냐고 묻는데 옆에서 3 Rs라고 거둔다. 마침 10 Rs 단위 지폐가 없어 할 수 없이 동전 5 Rs를 내고 하나만 맛 보려고 했다. 나머지 2 Rs는 팁. 그런데 팁 주지 말라고 말린다. 그렇게 하나만 어쩔 수 없이 사고 돌아서며 인사를 나눈다. 걸어가며 한 입 베어먹는데...


맛있다. 너무 맛있다. 고구마 튀김처럼 생겼는데 어니언에 소금을 살짝 뿌려 고소하고 달콤하다. 결국 근처 상점에서 돈을 거슬러 다시 할머니께 돌아간다. 6개 달라고 했는데 1개가 없어 다른 걸로 대신 주신다. 계산은 옆에 주민들이 도와주고 할머니는 그저 웃으신다. 그런데 동네 주민들이 사진 찍으라고 먼저 재촉한다. 그렇게 기분좋게 배를 채우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돌아선다. 입에 넣는 것은 행복이니라. 맥주만 있었으면 극락왕생. 그래도 물로 대신해야 하는 현실이 나쁘지 않았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자리가 있길래 앉았는데 무언가 낌새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 칸에는 여자들만 있는게 우연이라고 생각한 게 바보였다. Lady 전용 좌석이 따로 있었다. 무안함에 바로 일어서서 문 옆에 기대는데 다음 역을 지날 때 어느 청년이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다. “어느 출신이냐?” 그리고 대화가 진전이 된다. 서로의 이름을 말할 때 즈음 내린다고 한다. 내려서 돌아서서도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헤어진다. 


인도에 여행객으로 방문한 입장에서 나만의 시각으로 그들을 판단하려 한 건 아닌지 생각이 든다. 콜카타에서의 주말이 저무는 지금 적어도 확실한 사실은 인도는 나에게 여행할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타고르 시인을 통해 알게 된 다른 이의 시를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이 글을 통해 바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