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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아시아/인도

3. 인도에서는 특히 성질을 죽여라

성질을 죽여라. 


푹 잤다. 그럴 법도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오늘 하루는 어떨까? 전보다 자신이 생겼지만 막상 오전에 나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어제는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다녀 온 후 숙소를 새로 잡으면서 드레싱할 시간을 놓쳤다. 이 곳 클리닉 센터에서는 오후 2시면 마감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가장 먼저 해결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첫 날 방문한 클리닉 센터를 방문했는데 사람들이 많았다. 환자들보다는 약 관련 영업사원들이 더 많아 보인다. 기다리다 지쳐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는데 비서 업무를 보는 남자 선생이 점심을 먹으러 간다. 닥터가 내 상처를 보지도 않고 비서를 기다리라고 한다. 인도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한 시간 끝에 다시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또 기다리란다. 그러더니 닥터로부터 쪽지를 건네받아 나에게 준다. 해당 약품(솜, 밴드 등)을 나보고 사오란다. 그럴거면 내가 왜 여기서 기다라고 돈을 더 내며 드레싱을 맡기겠느냐고 따졌다. 결국 나와버렸다. 그리고 다른 클리닉 센터를 알아봤지만 찾기도 어렵고 일반 약국이라고 써진 곳에서는 소독약 하나도 구하기 힘들다. 그렇게 두 시간을 더 해멘 끝에 소독약과 약품을 구입하고 숙소에 돌아와 자가로 드레싱을 마쳤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는 참 쉬운 드레싱이 이 곳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걸어다니면서 콜카타 풍경을 사진으로 남긴 것으로 위안 삼아보려하지만 벌써 진이 다 빠졌다. 간단히 인도식 빵과 티로 끼니를 때우고 천천히 나간다. 원래 서더스트리트 근처 인디언 뮤지엄을 관람하려 했는데 오후 4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내일로 미루고 대신 빅토리아 메모리얼 홀을 중심으로 다니기로 했다. 전날도 그렇고 오늘도 계속 걷다보니 주위 지리는 대충 파악이 된다. 지하철로 세 정거장에 위치해 있지만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인도의 큰 공원과 정원 숲을 가로질러 빅토리아 메모리얼 홀로 향한다.


빅토리아 메모리얼은 1901년 사망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기념관으로 무굴 제국의 뒤를 이은 영국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따지마할을 넘어서는 목적으로 15년 이상 공사 끝에 완공한 건물이다. 따지마할은 무굴제국 5대 황제의 아내 무덤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로 유명하다. 영국 식민지 시절 수도였던 콜카타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의 하나인 빅토리아 메모리얼. 실제 찾아갔을 때는 아쉽게도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주위 정원들이 매우 아름다웠다. 빅토리아 메모리얼 근처에 St. Paul’s Cathedral(성 바울로 성당?),  Academy of Fine Arts, Nandan 등 인도 예술 거리를 지난다. 때마침 거리에서 대규모 행사가 있어 거리는 차들로 꽉꽉 막히고 행사장 주위 사람들 사이로 간신히 지나쳐 나간다.          



돌아오면서 저녁을 먹고 나니 7시가 훌쩍 넘었다. 다른 곳을 더 들렸다 갈까 아니면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지하철을 타고 콜카타의 대학로 거리라 불리는 ‘Colleage St’를 방문하기로 했다. 대학로라면 그래도 술집이나 놀거리는 좀 있겠지 생각하고 간 게 부끄러울 정도로 대학로까지 가는 거리는 콜카타 다른 거리와 유사하며, 막상 찾아가보니 서점들이 줄비해 늘어선 게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우리 대학가의 서점은 점차 문을 닫는 추세인데.. 


인도에서는 야구보다는 크리켓이 유명하다. 좁은 골목을 지날 때 사람들이 조그마한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크리켓 경기를 지켜본다. 와이파이 찾기는 오아시스인 이 곳에서 나 역시 마리한화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M.G Road 역 주변 동네를 걸어다니는데 위험천만하게 오토릭샤와 오토바이들이 질주한다. 늦저녁에 시원한 바람도 제법 불지만 계속 걷다보니 땀은 여전히 흘러내린다.   


지하철 역을 헷갈려 주위를 맴도는데 어느 친구가 반대편에 있다고 자신있게 알려준다. 거짓말이다. 갈증과 짜증이 더욱 심해진다. 이제 지하철을 타기 위해 표를 구입하려는데 창구 앞 내 차례 뒤에 있는 아저씨가 손을 내밀며 계산을 한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당당하게 표를 구입하고 간다. 그래도 빨리 지하철에 내려 콜라로 갈증을 해결할 생각에 잊어버린다. 지하철 안 손잡이를 잡는데 어떤 사람이 내 손잡이를 잡는다. 조용히 다른 손잡이를 잡고 애써 잊으려 한다. 그런데 직전 정거장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무수히 탄다. 한국 지하철에서도 만원을 이루는 모습이야 익숙하지만 이 곳은 전쟁이다. 내리려는 사람이 문 앞까지 가지도 못하는데 타려는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온다.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 새치기하고 도로에서는 클락션을 수없이 눌러대며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이 곳. 적응되었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다. 


내리자마자 인도 콜라를 3병이나 연거푸 마셔버렸다. 그래도 갈증이 다 가시지 못했다. 

지친 몸을 겨우 이끌고 돈을 달라는 아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며 지나친다.

오늘 하루 무사히 돌아온 것에 만족한다. 인도 콜카타에서 때로 성질을 죽여야만 하기에 아직 적응하기까진 아득해보인다.